여행

법정스님 생가터~ 전남 해남 우수영

숙부인편 2022. 3. 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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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우수영은 역사적인 공간이 많은 곳이며, 우수영하면 떠오르는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이라고 하면 단연 이순신 장군일 것이다.

조선시대 수군의 전라우수영이 있던 곳이다.

우수영바다가에서 조금올라가면 법정스님 생가터가 있다. 아직은 공사중이었다. 가본지가 2년되었는데 지금도 공사중일련지 아니면 지금은 다 완공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왠지 제주를 가려는 배를 기다리다가 우연찮게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 법정스님 생가터"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나는데 아직도 생가터는 무소유적인 모습으로 공사중이며 터만 존재했다.

조만간 이 터에 다양한 법정스님에 대한 글과 사상들이 알려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난을 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를 원한다. 세상의 삶이 그리 만만치 않고 녹녹치 않은 것 때문이다. 무소유의 가르침보다는

육신의 정육,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성과 돈과 권력에 매여사는 우리 인생들의 모습에 다시한번 반성해보게 된다.

나는 가난을 택하지 않았다. 가난해졌기 때문에 택한것이 아니라 그리 흘러간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무소유의 삶을 살아갈수 없는

현실에 매여있게 되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법정스님의 속명은 박재철이다. 1932년 10월 8일 전라남도 해남(海南)에서 났으며  1956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3년을 수료한 뒤, 같은 해 통영 미래사(彌來寺)에서 당대의 고승인 효봉(曉峰)을 은사로 출가했다고 한다. . 같은 해 7월 사미계(沙彌戒)를 받은 뒤, 1959년 3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승려 자운(慈雲)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어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明峰)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하였고, 《불교신문》 편집국장·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송광사 뒷산에 직접 작은 암자인 불일암(佛日庵)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홀로 살았다.

1994년부터는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6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었다.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강원도 산골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폐암이 발병하여 3~4년간 투병생활을 하였으며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8세(법랍 54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생전에 수필 창작에도 힘써 수십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는데, 담담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정갈하고 맑은 글쓰기로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 작가로도 문명(文名)이 높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산방한담》 《텅빈 충만》 《스승을 찾아서》 《서 있는 사람들》 《인도기행》 등이 있다. 그 밖에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숫(수)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법구경)》 《인연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의 역서를 출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법정 [法頂]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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